"지식경제부의 IT관련 정책에 'IT산업'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이렇게 말하면 덜떨어진 사람이다.
지경부의 '5대 주력산업과 IT의 만남' 프로젝트를 보라. "자동차, 조선, 국방, 의료, 건설 등 우리나라의 5대 주력산업이 IT와 만나면 자동차, 선박이 지능을 갖고 로봇이 위험한 일을 대신한다"는 것이 정책 배경인 이 프로젝트는 올해 당장 706억원이 투자된다. 5대 IT융합분야 31개 국책과제가 가동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 이 분야 융합기술을 개발하는데 5년간 총 1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여기에 IT가 핵심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10만 중소제조업을 대상으로 업종별․규모별 생산현장의 공정혁신을 전국적으로 추진하면서 이들의 제품생산 전주기(설계-제작-유통-서비스)에 IT 신기술을 접목한다는 방침이다. 거대한 IT시장도 열릴 전망이다.
실제로 지경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책을 보면 "IT없는 지경부 정책은 없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IT'가 곳곳에 박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경부 정책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정책을 곱씹을수록 'IT융합은 있되 IT산업이 없다'는 의구심이 솟아오른다. 지경부는 우리나라의 전산업은 물론 이제 IT산업을 관장하는 대표부처이다. IT산업에 대한 독립적인 정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IT융합은 세계 각국이 지향하는 공통과제이다. IT를 기반으로 주력 산업은 물론 전 산업의 경쟁력을 재충전시켜 곳곳에서 성장동력을 일으켜 보겠다는 전략은 21세기 모든 국가들의 생존 전략이다. 그러니 지금 정부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의 IT전략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절대 과제라고 봐야 한다.

또한 IT융합 정책이야말로 정체기에 들어선 IT산업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거대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만하면 IT업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 별도로 IT산업 육성 운운 하는 것은 참으로 구태의연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랄 수 있다.

그래도 IT산업에 대한 전략은 있어야 한다. 특히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한 정책이 초기부터 지경부 정책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IT산업이 바로 IT융합의 기반기술이라는 데 있다. 융합산업은 시장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반기술은 다르다. 기반기술이 융합산업을 뒤따르는 형국은 결국 편향성을 낳게 된다. IT를 융합산업에 녹아흐르는 요소로서만 인식하는 것은 지극히 하드웨어적인 발상으로 위험하다. 융합산업을 뒤쫓다가 마침내 IT공동화(空洞化)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다.
IT라는 게 본디 절반은 자체 산업의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타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산업의 수익창출 없이 IT산업도 없지만, IT없이 타산업의 경쟁력도 없음'이 IT업계의 진리다.

두 번째는 IT산업에 대한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IT산업이 정체기에 들어섰고, 결코 성장동력산업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인 것 같다. 각종 연구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IT산업의 성장곡선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서 IT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것은 아직은 무리가 있다.

이른바 정보화 시장이 논쟁의 핵심이다. 수년 전처럼 두자리수의 성장률은 없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정보화의 질적 향상에 따르는 고도화 수요가 만만치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외산 의존도를 빌미로 지레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신규 정보화 시장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IT투자율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못미친다.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질수록 정보화 투자율 또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것임을 말한다. IT융합산업의 성장 역시 새로운 정보화 시장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정보화 시장은 이제 비로소 정보화다운 정보화를 시작했다는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외산으로부터 정보화 해방을 선언할 수 있는 역량이 국내 업체들에게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마침 국내 IT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업계의 수출길에 동이 트고 있다. 미개척된 세계의 정보화 시장도 많다.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 IT기업들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할 만한 실력도 갖추고 있다.

"IT는 이제 시작이다." 얼마전 빌 게이츠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앞으로 삼라만상이 IT와 연관을 맺을진대 지금까지의 IT는 빙산의 일각이다. 정부가 IT산업에 대한 별도의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들이다.

미국, 유럽, 일본, 인도, 대만, 중국 등과 세계 정보화 시장에서 경쟁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창의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우리의 속성을 가장 잘 발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정밀한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이런 점들을 지경부가 충분히 감안하고 있을 것으로, 그리고 거대한 청사진이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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