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만일 일본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1인당 수억원 씩을 줄테니 독도 영유권을 넘겨라 한다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질문은 그야말로 '우문'이다.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국민이라면 이런 제의에 분노의 열기만 더 뿜어낼 것이다. 설령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 대열에 놓여 있었던 1950-60년대일지라도 이런 가설은 가당치 않은 짓이었으리라. 이처럼 그 어떤 경제적 가치로도 절대로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부문이 있다.

전국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 광우병을 우려하는 국민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 협상이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서투른 고육책이었음이 고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국민이 지향하는 바와 정부 정책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

모든 국민이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경제살리기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정서적 공감대는 어느 정도 두께를 형성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 찬성해온 사람들마저도 그 전초 단계인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으로 인해 한미 FTA 체결이 깨질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경제살리기가 발목을 잡힐 수도 있을 터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국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다층구조의 입장과 의견이 혼재한다. 원천적으로 한미FTA를 반대해온 세력들도 있고, 한미FTA를 찬성하지만 쇠고기 수입건 만큼은 반드시 재협상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은 아예 한미FTA와 쇠고기 수입을 연계시키는 논리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물론 매우 희박한 광우병 발병률 때문에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포기할 수 없다는 측도 만만치 않다.

정리하면, 일단 쇠고기 수입 건만 놓고 보면 거의 모든 국민이 재협상을 바라고 있다. 한미FTA에만 대해서도 찬성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그렇다면 두 사안을 결합시켜놓고 의견을 묻는다면? 현실적으로 우매한 가정이지만 쇠고기 건도 재협상하고 FTA도 체결하는 쪽이 높을 것이다. 부득불 두 사안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지금으로선 쇠고기 건 재협상이 최우선인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밝혔듯이 그 어떤 것보다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건을 재협상하는 것이 곧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부는 설득을, 국민은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며 의견의 간격을 좁히지 않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정국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석달여 만에 왜 이토록 나랏일이 꼬일대로 꼬인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사태가 오기까지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자인했다.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정부의 의지만 앞세워 정책을 추진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읽고 정책을 펼치는 자세로 진화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읽는 기법으로 원용될만한 좋은 것 중에 하나가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이다. CRM이란 고객 정보를 통해 고객을 알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영관리기법이다. 주로 기업들이 활용하는 IT시스템으로, 다양한 계층의 고객 정보를 분석하여 고객이 원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수익을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정부도 이제는 정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해야 한다. 고객은 곧 국민이다. 기업이 고객의 마음을 얻어서 수익을 창출하듯이 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경제살리기라는 대명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경제관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국민이 생각하는 잘먹고 잘사는 수준이 70년대식인지 21세기형 웰빙을 기저로 하는 것인지, 경제살리기에 우선하는 부문은 어떤 것들인지, 대기업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중소기업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세대별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헤아려야 한다. 이러한 분석 위에서 모든 정책이 생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기업은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면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이미 정설이다. 더군다나 우수한 제품이라고 우기며 고객에 접근하는 20세기식 시장 공략 방식은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마찬가지로 21세기 형 정부, 선진국을 지향하는 정부라면 '우수한 정책'이라고 국민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먼저 국민의 마음을 읽고 정책을 내놓아 그 정책을 성공시키는 길을 밟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2003년부터 'National CRM'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국민들의 정책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이같은 제도를 활용하여서라도 쇠고기 파동은 물론 지난 석달 동안 보여온 각종 시행착오를 또다시 일으키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안들 역시 이러한 CRM적인 방법론에 의해서 다시 검토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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