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세상사가 그렇듯 IT업계에 놓여있는 갈등구조에도 딱히 '이게 옳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특히 공급과 수요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잡다단한 비즈니스 관행들은 더욱 그렇다. 섣불리 판단하고 조치를 내리기 어려운 형편들이 얽혀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논쟁거리 중의 하나가 벤치마크테스트(BMT)에 관한 비용문제이다.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 룰이다. 최적의 성능과 가격을 갖춘 제품이 공정한 경쟁과정을 통해 수요자에게 안착되는 구조를 위해서다. 더군다나 최첨단 기술을 주고받는 IT업계에서의 공정 경쟁 구조는 부연설명이 곧 군더더기일 뿐이다. 그 공정 경쟁의 수단으로 우리 업계가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벤치마크테스트이다. 사실 BMT가 능사는 아니다. BMT 환경을 교묘하게 조작, 오히려 합법적으로 부정행위를 감싸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BMT만큼 제품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주는 방법은 달리 찾기가 힘들다. 게다가 최근 발주자들은 BMT 자체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에 테스트를 의뢰하는 경향이어서 그 효용성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도 어김없이 또다른 문제가 뒤따른다. BMT비용이 말썽이다.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가로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듯하다. 하지만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언뜻 제품을 팔고자 하는 공급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공급업체는 얼마든지 많으니 제품을 팔고 싶거든 BMT비용을 대고 경쟁에 참여하라는 식이다. 아직 이런 방식이 우리 업계의 관행이다.

과연 공급자가 BMT비용을 부담하는 일이 합당한가? 그렇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질 좋은 제품을 공급받고자 하는 구매자가 응당히 BMT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다. 구매자는 정보전략(ISP)를 기획하는 일부터 프로젝트를 완료하기까지 모든 진행절차에 예산을 책정한다. 그 과정에 당연히 BMT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공급자, 소위 '을'이 처한 입장을 엿보며 프로젝트 예산을 짜는 것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프로젝트 발주자는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 열쇠인 최적의 제품을 고르기 위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발주자가 BMT비용을 치르는 것이 선진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실제로 지난해 국민은행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전산기 BMT의 비용 일부를 분담하는 선례를 남긴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구매자가 선뜻 BMT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구매자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예산을 절감해야 하는 마당에 그 많은 공급자들의 테스트 비용을 다 부담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공급업체들이 판매를 담보받지도 못한 채 엄청난 BMT 비용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투여해야 하는 일도 이제는 중지돼야 한다. 이 두 간극을 메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주자들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더불어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TTA에 EAI와 UI 툴에 대한 BMT를 의뢰했는데 업체당 400여만 원이 넘는 비용 문제로 공급업체들의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공단측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노력은 높이 살만 하지만, BMT비용이 국산솔루션 업체들을 짓누르고 있어 그 빛이 바래지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이번 일에 국한하지 않는다. 줄곧 있어왔고 앞으로 벌어질 일이다. 국가기관 또는 공공기관에서부터 BMT 비용을 예산에 책정하는 일을 앞장서야 할 것 같다. 당장 시행이 어렵거나 형평성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기로 하면 얼마든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특히 국산 솔루션 업체들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적 방안으로 BMT를 바라봐야 한다. BMT는 소프트웨어 분리발주나 제값받기, 나아가 국산제품의 인지도 향상 및 국산제품 개발의욕 고취 등 여러 측면에서 그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국산 솔루션 업체들이 BMT비용을 부담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그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국산솔루션 업체들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예산에 BMT 비용을 포함시키는 방안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면 다양한 방법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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