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0여년전 미국 스탠포드 연구소의 Don Parker는 인터넷의 전신인 APARNET 구축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컴퓨터가 상호 접속되면 정보보호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창하였다. 정보화라는 빛의 이면에는 정보화 역기능이라는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예고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보면, 낮에는 우연한 사고가 많지만 밤에는 강도, 살인 등 주로 의도적인 사고가 일어난다. 그만큼 어둠은 범죄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실명성이 낮이라면 익명성은 밤에 해당한다. 물론 밤이라 해도 환하게 밝혀진 연구실이나 공장의 야간작업을 통해 우리는 낮보다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더우기 생산적인 밤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몸에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는 열의마저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대다수가 즐기는 밤의 유흥문화는 아무래도 질서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제 유명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인터넷 실명제를 두고 걷잡을 수 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면서 이 문제에 대해 IT분야의 전문가들도 적극적인 의견개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All or Nothing」이라는 흑백논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좌 아니면 우, 도 아니면 모라는 식의 사고는 결코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제는 하이브리드 시대다.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차가 출시되고, 이미 널려 있는 여러 가지 기술의 장점만을 모아 남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 기능을 구현하는 것도 가치가 인정되는 그런 시대다.

익명성은 네티즌 누구나가 부담없이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알릴 수 있고, 또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남」 혹은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토론방에 참여한다면 그건 언어 폭력이지 표현의 자유도 아무 것도 아니다. 최소한 표현의 자유는 진리와 사실에 관한 논쟁이어야 하며, 소모적이 아니라 생산적이어야 한다. 「실명제 도입이 옳다 그르다」, 「접속수가 몇만 이상으로 하자」. 논쟁을 하더라도 우리만의 어두운 과거로부터가 아니라 인터넷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선물, 4만Km 지구공간에서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터넷 본질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이제 건전한 인터넷 사용을 위해 하이브리드 시대를 열어 가자. 책임없이 사회여론을 주도해도 안되고, 하이드파크 공원의 연설공간처럼 국민 창의도 존중하자. 실명제의 장점과 익명성의 장점의 혼합, 그 대안의 하나로 공개 토론방을 개설하고 있는 영리목적의 사이트는 실명제로 하고, 비영리적 사이트는 익명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