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참여 여부보다는 의지와 역량이 대국민 서비스 성공 좌우

[아이티데일리] 지난 7월 코로나19 백신예약시스템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바로 백신예약시스템 먹통 사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 그간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해온 것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부가 서둘러 백신예약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급박한 과제를 갖고 있는 가운데, 4개월여라는 짧은 기간 내에 40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예산을 갖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참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 주장이다. 특히 국민이 초유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분노 섞인 불편함을 호소하는 가운데, 정부의 급박한 요청을 받고 불려온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섭섭함을 담아 불만을 제기할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였다. 대기업 참여 확대에 대해 업계에서 가장 흔하게 들은 반박이 “그렇다면 적은 예산으로 급히 개발해야 하는 시스템은 대기업에게 맡기면 문제없이 해결되는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대기업이 보유한 뛰어난 인재들을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도 과제를 해결할 수 있고, 어려운 과제라 하더라도 단기간에 많은 인력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기대다. 하지만 이 경우 대기업이나 소속 직원 입장에서도 결코 이득을 보는 상황이 나올 수 없다. 이는 지난 2013년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기 이전, 이미 낮은 이익률로 어려움을 겪은 대기업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업계 많은 전문가들이 근본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질병관리청의 IT역량 부족이다. 실제 초기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타 공공기관 사업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IT나 SW에 대해 잘 아는 담당자가 없다시피 했다”고 언급했다.

물론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새로 승격된 기관이라 역량이 부족할 수는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부가 백신예약시스템 구축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문제가 발생한 후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등 담당 부처를 중심으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등 공공부문에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실무자들을 모아 사태에 대응했다. 그리고 사태 해결을 돕기 위해 참여한 민간 기업들은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중소, 스타트업까지 다양했으며 실제 활약 정도 역시 기업의 크기와는 관계가 없었다.

결국 코로나19 백신예약시스템 먹통 사태를 통해 확실해진 것은 사업 발주기관이 IT와 SW사업에 대한 충분한 의지와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공공기관은 정확하게 필요한 업무를 도출하고 적절한 예산에 사업을 발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때, 즉 민간 기업들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마련했을 때 실패 없는 대국민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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