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CRM이 실패했던 원인은 전략이나 프로세스가 아닌 기술로서 접근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우선 CRM을 담당했던 부서만 하더라도 현업이 아닌 IT부서였다.
이들은 자사의 고객을 직접 만나 고객의 불만이 무엇인지,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고객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인 안 된 상태에서 데이터웨어하우스(DW), 콜센터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때문에 CRM은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인식만을 남겨 놓았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CRM은 글자 그대로 고객이 중심이 되는 솔루션이다. 어느 누가 진정한 내 회사의 고객인지, 즉 이익이 되는 고객은 누구이고, 트랜잭션만 일으키는 고객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고객을 분석하겠다고 덤벼든다면 그것 만큼 무모한 일은 없을 것이다.
CRM 전문업체 가운데 하나인 C사의 한 관계자는 "목적이 불분명한 CRM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고객 대응시간을 2일에서 8시간으로 줄이겠다거나 영업활동을 실제 거래계약으로 성공시키는 확률을 높인다는 목적에 따라 CRM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CRM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는 조직과 컨설턴트가 부재했다.
둘째, 타깃 고객군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DW만 구축했다. 셋째, 투자회수(ROI)를 보여주지 못해 임직원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넷째, 시스템만 구축하면 모든 고객의 충성도가 올라갈 것으로 착각했다.
다섯째, CRM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잘 몰랐다. 이밖에도 실패 원인들은 많다.
어쨌든 CRM 시장은 과거와는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즉 IT업체들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으로 이슈가 변화하고 있고, 또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ERP의 경우 SAP 또는 오라클이 신 버전을 발표하고 새로운 레퍼런스를 추가했느냐가 주요 쟁점이었으나 CRM은 달랐다.
태평양, 롯데백화점, 외환은행 카드부분 등이 CRM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시장의 관심 사안이 됐고 이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태평양은 백화점에 공급하는 제품에 대해 백화점과 정보를 공유해 실제 고객에게 어떤 상품이 팔리는지를 파악하고 있고, 롯데백화점은 CRM 요원 61명을 전 매장에 배치해 매장별로 마케팅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외환은행 카드부문은 최근에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RFM)를 기반으로 고객을 분류하고 분석해 마케팅을 실행하고 있다. 또한 고객의 구매결과 이외에 구매행태, 이사, 결혼, 출산 등의 변화 등에도 주목하고 있다.
5년 전의 CRM도 고객 분류, 분석, 행동변화 등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사례가 없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IT업체와 사용자들은 CRM 학습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사용자들은 수많은 마케팅 테스트를 거쳐 고객의 행동 변화를 예측할만한 데이터를 쌓고 있었고 이제서야 그것들을 기반으로 CRM 성공사례들이 생겨나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CRM 베스트 프랙티스가 올해 말에는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박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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