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인터넷 서비스의 수익을 높여줄 부가서비스로 ISP들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전화(VoIP) 사업이 핵심 유선사업의 수익성을 잠식하는 등 적지 않은 딜레마에 빠졌다. VoIP는 기존 유선전화보다 요금이 70∼80% 저렴하고, 음성통화는 물론 화상전화나 데이터 교환까지도 손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면서 지난해부터 많은 사업자들이 이 시장에 진출했거나 사업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VoIP 현 단계에서 적극 추진할 수도 그렇다고 뒤로 미뤄놓을 수도 없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있다.

◆유선전화 고객의 VoIP 전환 ‘걱정’ : 올 들어 대대적으로 VoIP 사업의 포문을 연 한 ISP 관계자는 “VoIP 사업을 위해 기술개발, 전문 인력 확보 등 적지 않은 투자를 진행해 올해 사업을 본격 출범시켰지만 기존 유선전화 사업의 매출 감소를 해결할 뾰족한 대안이 없어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지금 상태에서는 기존 유선전화 고객이 VoIP 고객으로 전환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 경영진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물론 사업자들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같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선전화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는 KT의 경우, VoIP가 대세를 이뤄 많은 사업자들이 뛰어들게 되면 현 고객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KT VoIP사업부의 최순철 부장은 “VoIP로 가더라도 현 고객이 유지된다면 적극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VoIP는 유선전화처럼 물리적인 진입장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KT는 매출 감소도 걱정이지만, 후발주자들의 VoIP에 고객을 뺏기게 되면 이것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고객 감소와 직접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더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KT는 VoIP를 위한 망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용량 증설, 서비스 수용시설 증설, IP PBX 사업 기반 강화 등 전반적인 서비스 환경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순철 부장은 이에 대해 “6월 말 사업권이 결정 나면 고객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가입자가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 있는 인프라로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미리 더욱 탄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부장은 또 “경쟁사들의 도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인프라를 잘 갖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VoIP 사업 성공에 대한 회의론 제기 : 지난 4월 말 VoIP 사업 개시를 대대적으로 알리며 서비스에 들어간 삼성네트웍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네트웍스는 주 고객인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요구가 많은데다가, VoIP가 대세라고 판단해 사업을 적극 추진했지만 유선전화 매출이 줄어드는 부분을 보충할 이렇다 할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네트웍스 관계자는 “줄어드는 통화료 수입을 보전할 부가서비스를 아직 찾지 못한 상태여서 유선전화 고객이 급격히 VoIP 쪽으로 전환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삼성네트웍스는 지난 3월 인터넷전화 기간통신사업권 신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기존에 일정 규모의 유선전화 고객을 확보하고 있어 다른 별정사업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로텔레콤은 기존 유선전화 고객을 지키는 한편, VoIP 사업에서는 KT의 고객을 적극 빼앗아야 하는 미션이 있다.
이렇듯 VoIP 업체들은 선발 유선전화 사업자와 후발 VoIP 사업자 가릴 것 없이 사업에 대한 크고 작은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유선전화 고객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하나로텔레콤은 기존 고객의 VoIP 전환에 따른 매출 감소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지만 VoIP 사업 자체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매스전화팀 황영철 과장은 “하나로가 2002년부터 VoIP 사업을 해왔지만 시장에 얼마나 반향을 일으켰는지 생각해보라. 100년이 넘는 유선전화 역사를 몇 년 안에 따라잡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난관들을 넘어서야 한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VoIP는 제2의 메트로이더넷? : ISP들은 VoIP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힌 바 있다. 바로 메트로이더넷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다. 도시 단위로 망을 구성해 서비스하는 메트로이더넷은 기존의 전용선보다 가격은 매우 저렴하고, 속도는 훨씬 빠르다는 점 때문에 한 때 대형 ISP들이 앞다퉈 메트로이더넷 망을 구축하고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바 있다.
하지만 전용선 고객이 메트로이더넷 고객으로 전환되는 것은 매출의 급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어 ISP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KT의 경우 전용선 사업을 담당하던 법인영업 부문과 메트로이더넷 사업 부문의 갈등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른 ISP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결국 메트로이더넷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규모 있게 사업을 진행하기 보다는 게임방 등 소규모 영업 위주로 진행되는 측면이 적지 않았고, 이러한 시장의 특성상 저가 경쟁 또한 심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서는 VoIP 사업이 제2의 메트로이더넷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사업자 안에서 상반된 요구가 충돌하는데다, 그러한 문제점을 상쇄할만한 뚜렷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목전에 두고도 총을 쏘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VoIP 업체들의 현 상황이며, VoIP 시장의 현주소이다. < 김재철 기자>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