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토리지 업계는 격전을 앞둔 전장처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이번 달 초까지 한국EMC, 한국IBM, 한국HP, 히다치 데이터 시스템즈코리아 등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신제품 및 전략 발표회를 잇달아 가졌다.
지난달 말 한국EMC는 ‘EMC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ILM 컨설팅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발표에 이어 이 달 6일에는 ‘EMC 컴플라이언스 솔루션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IBM은 이보다 하루 앞선 7월 5일 ‘한국IBM 토털 스토리지 ILM(정보 수명주기 관리) 세미나를 개최해 전략과 솔루션을 발표했다.
스토리지 부분 영업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국HP는 지난 11일 ‘그리드 스토리지’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산업별 5대 ILM 솔루션을 발표했고, 13일에는 ‘HP ILM 솔루션 데이 2005 세미나’를 개최해 시장 공략에 본격 착수했다.
하반기 시장을 염두에 둔 전열 정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핵심테마가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ILM(정보 수명주기 관리)이다.
ILM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정보를 단순히 저장하는 데서 진일보해 비즈니스 요구와 문서 정책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정보에 ‘수명’을 부여해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일견 보기에도 정보의 질적인 관리와 자동화 구현 등으로 스토리지의 효율성과 활용도를 높여줘 스토리지 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 역할이 기대된다.
더욱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컴플라이언스는 효율적인 정보 저장과 관리를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어 ILM의 부각을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얼마 전 외신에는 모건스탠리가 개인과의 소송에서 패소해 상당 금액을 배상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투자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손해를 보았다는 소송인의 주장에 대해 모건 스탠리가 적시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증거를 제때 법원에 제출하지 못해 불거진 일이었다.
결국 이는 금융 관련 각종 문서(이메일, 메신저 등) 보존에 대한 규제 규정인 SEC(미국 증권거래위 원회) 17a-4 법안을 위배했다는 판결이 내려져 모건 스탠리는 배상을 해야만 했다.
컴플라이언스가 ILM을 어떻게 촉진시키느냐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내 역시 의료정보의 의무보관 기간을 법률로 명시하고 있고, 10월 1일부터는 전자거래 기본법이 시행될 예정에 있어 법률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해 대다수의 스토리지 공급업체들은 컴플라이언스 혜택으로 ILM 시장이 앞당겨질 것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하반기 전자거래 기본법의 적용은 정보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울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ILM의 도입을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전망 속에서 최소한 국내시장에는 결코 간과돼서는 안 되는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다양한 규제에 대해 대응은 하되 최소한으로, 어떻게 보면 마지못해 하는(?)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바젤Ⅱ의 경우를 제외하고 내부 통제나 내부 회계 개혁법 등 여타 컴플라이언스들이 모두 법률에서 지시하는 최소한으로 구축이 이뤄지고 있다.
규제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처방보다는 추후 또 규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기반해 최소한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ILM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토리지의 가격하락 추세 속에서 새로운 추진 동력이 과도한 기대치로 일찍 좌초되는 것은 공급업체뿐만 아니라 IT 시장의 건강한 성숙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IT는 이제 더 이상 거품논란에 싸여서는 안 되며 실제 시장과 동떨어진 과도한 기대로 시장이 정상적인 성장에서 벗어나 왜곡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곧 산업의 전반적인 IT 투자뿐만 아니라 IT 산업 전체의 성숙을 저해하는 중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특정 이슈에 대해 경쟁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차근차근한 접근과 기업들의 고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스토리지 업계를 떠나 국내 IT 시장이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첩경일 것이다.
<이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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