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어쩜 저렇게 고울까? 나도 여치처럼 노랠 잘 부를 수만 있다면….'
당나귀는 여치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얼 먹기에 그리도 목소리가 곱니?"
이슬만 먹고산다는 여치의 말을 듣고 당나귀도 따라 하기로 했답니다.
그러나, 며칠째 굶은 배에선 꼬르륵 소리만 들려올 뿐 목소리는 그 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참아야 해. 그래야 여치처럼 고운 목소릴 가질 수가 있으니까.'
결국 당나귀는 쓰러지고야 말았습니다. 그 덩치를 이슬만으로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게지요. 이슬도 받아먹지 못할 만큼 기력이 떨어진 당나귀는 끝내 굶어죽고야 말았답니다. ('이솝 우화' 중 「당나귀와 여치」에서)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그저 웃고 말았다.
'조성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했다. 그러나, 그 이름 석자가 아닌 그 옆의 사진으로 비로소 야구선수, 조성민과 동명이인이로구나 했다. 누군가 짓궂게 최진실의 광고 사진을 구해 버스 출입문 위에 나란히 붙여 놓은 것이다.
"별 건가? 아마 모르긴 해도 걔네들보다 더 오래 오래 붙어 있을 걸? 여기에."
한 동료 버스기사가 이리 놀려댔던 게 이젠 사실이 되었다.
기사직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은 지 어언 사십 년, 이 버스에서만도 이십 년의 세월을 보낸 나이 육십의 조성민 기사는 최진실의 결혼이 발표될 즈음부터 동료들로부터 많은 농을 받아야 했다.
"복도 많아. 두 번 장가도 부러운데 젊은 최고의 미녀를 그 나이에 품다니..."
이름 덕분에 이런 우스개 소릴 많이 듣고 산다는 초로의 버스 기사는, 일요일 오후 막차까지 끌어야 한다며 무척 진지한 얼굴로 운전대 앞에 앉는다.
진중한 모습의 그를 보며 엉뚱하게도 어제 본 비디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지금 세상은 우선 비디오가 받쳐줘야지요. 내가 한 얼굴 하잖아요?'
손가락 몇 개로 누르기만 하면 절로 기계(전자피아노)가 반주를 다해준다며 피아노 실력보단 처세 요령만 먼저 터득한 노랑머리의 어린 웨이터가 잠깐 스쳐갔다. 또 연예인 부부 아이의 광고료가 10억에 근접한다는 지난 뉴스도 함께 오버랩이 되어 들려왔다.
"제 능력이 사람마다 다 다르고 또 그 능력대로 산다고 우린 믿었었는데, 그러나, 요즘의 능력은 요령이고 처세술인가 봐. 대형 서점에도 보면 이런 처세술만의 책이 잔뜩이잖아? 소설책도 우선 겉포장이나 제목에 더 관심을 둔다고 하니까. 미국책 봤어? 존 그리샴이나 스티븐 킹의 책들은 페이퍼백으로 정말 보잘 것 없이 만들어놨는데도 그렇게 많이 팔린다는데 말야."
소설을 쓴답시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는 동생도 생각난다.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세상에서 단지, 버스 출입문 위에 붙은 이름 석자와 연예인 사진이 잠깐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끝난 뒤에도 바로 비디오를 끄지 못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여운도 그 웃음 뒤에 또 남는다.
시골동네로 내려가 술꾼의 치기를 다 받아주면서 그제야 웃을 수 있었던 꿈 많던 한 노래꾼의 버려야 할 꿈이 한참동안 나를 텔레비전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노래보다는 명예와 돈이었다. 꿈이었던 명예와 돈을 포기해야 했던 현실로 인해 그는 남쪽 지방소도시로 도피하지만 거기서 비로소 제 진정한 꿈을 찾는다. 노래에만 열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랑하는 여자가 동행해주고 있다. 술꾼들로부터 별꼴을 다 당해도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을 보고 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화의 당나귀는 남의 고운 목소리만이 꿈이었다. 꿈을 버리면 죽진 않았을 것을...
웃자고 해 붙여놓은 버스기사의 기지로, 웃음은 때론 울음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걸 몸소 체험한다. 조성민·최진실과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노래꾼은 전혀 별개의 사람들이건만...
미국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였던가?
"집착을 버리면 더 자유롭다."
이런 주인공도 영화에선 결국 자살하며 웃는다. 극적 전환이라는 영화적 도구로 이해하면서 극단의 행동인 자살은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미국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가르치고 있는 게 있다. 체념의 미학이다.
정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실용주의를 앞세우며 정의를 스스로 짓밟고 있고 자유가 아닌 속박으로 남을 한없이 학살하고 있는 치들이 오히려 자유의 원칙에 따라 어쩌구 저쩌구 떠드는 힘만이 정의요, 자유가 되어버리고 있는 이 하수상한 세상에 적당히 눈감아버리고 모른 척하고 살라며 현실 외면을 더 부추긴다.
외면하고 체념하면 더러 웃을 수도 있는 세상,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건만... 눈 찔끔 감아본다. 억지로라도 웃고 싶어서다. 눈을 감으면 에라 하고 술에 몸을 던지고 싶어진다. 일제 강점시대도 그랬다더니 얼마나 지났고 세상이 바뀌었어도 이 사회는 여전히 술만을 더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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