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실 겁니까?
을 : 당연합니다.
갑 : 그렇다면 30% 이상 가격을 내려 주시지요.
을 : 적자라 안 됩니다.
갑 : 안 되면 말고, 귀사 제품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을 : 앗! 알겠습니다.

국내 대형 SI업체의 한 관계자(갑)와 중소기업 협력사(을) 간의 이런 대화는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및 솔루션 개발 업체들의 대다수는 IT 경기불황으로 최근 몇 년 동안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4년여 째 솔루션 개발 공급하고 있는 구로동의 한 벤처기업 사장은 "주변에 있는 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 업체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90% 이상 사라졌다"며 "정말 어렵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시작한 게 후회스럽다"라고 한 숨을 쉬었다. 특히 그는 대형 SI업체들의 '가격인하' 압력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며 손사래 친다. 어느 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 업체는 아예 대형 SI 업체와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형 SI업체를 둘러싼 중소기업들의 애환과 고통의 목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그들의 애절함은 절박하기까지도 한다.

국내 대형 SI업체를 대표하는 S사와 L사는 지난해 2조 원 안팎의 매출실적과 2천억 원 이하 1천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내 양사 직원들은 지난 연말에 푸짐한 인센티브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두 기업의 매출을 합치면 국내 시장의 약 60% 이상을 차지해 IT 산업이나 시장에서의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 IT 시장이 이들 대형 SI 기업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뜨면 중소 솔루션 기업들은 SI업체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대형 SI업체들이 국내 대형 IT 프로젝트를 거의 독차지하고 있고, 웬만한 규모의 프로젝트도 거의 이들 기업들을 거쳐야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이 수 조원의 매출과 수 천 억 원의 이익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때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형 SI업체들이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은 물론 그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SI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협력한 중소기업들의 도움도 그 어느 것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경쟁 입찰로 덤핑 낙찰을 하든 그렇지 않든 대형 SI업체들은 결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덤핑 낙찰을 하더라도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가격을 내려라, 아니면 말고"라며 적자를 떠넘기면 그만이다. 또한 그룹 계열사들의 도움, 즉 SM을 통해 많은 이익을 내면 된다.

그러나 이젠 이런 형태의 매출 및 이익구조로는 대형 SI업체들, 더 나아가 국내 IT 산업의 미래는 결코 없다. 더욱이 국내 시장만을 공략목표로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국내 IT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인만큼 이젠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다.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독자적인 기술력 향상과 솔루션을 개발에 앞장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들이 개발한 제품이나 솔루션을 공급하는 유통업체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일부 기업들은 미래를 대비해 신규 사업이 될 아이템을 찾거나 독자 솔루션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고, 독자 솔루션 개발에는 더더욱 소홀한 경향이 짙다. 솔루션 개발은 투자만 있을 뿐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자사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이나 솔루션도 없이 유통만으로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10년 뒤를 생각해 보면 앞이 캄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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