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그래텍 부사장(COO) 겸 공동창업자

[컴퓨터월드] 2000년대 인터넷 시대를 지나온 이 땅의 많은 이들에게 ‘곰(GOM)’은 그리 낯설지 않은 브랜드일 것이다. 사진 하나를 보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모뎀 시절을 지나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내 사람들은 ‘동영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익숙해졌다. 특히 미처 다 다운로드받지 못한 파일도 부분적으로 재생해주는 그래텍의 ‘곰플레이어’는 많은 곳에서 환영받아, 곰 발바닥 모양의 아이콘은 곧 ‘동영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래텍은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e스포츠 사업도 지난해 정리,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소프트웨어(SW) 기업으로서 역량을 강화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올 어바웃 비디오(All about Video)’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삼은 그래텍의 지난날과 앞날에 대해 들어보고자 이병기 부사장(COO) 겸 공동창업자를 만났다.

▲ 이병기 그래텍 COO

 주요 약력
- 그래텍 공동 창업, 現 부사장(COO) (1999- )
- 前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1994-1999)
-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정보 석사 (2000-2002)
- 숭실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1985-1992)


‘유니코사’ 출신들이 만든 ‘팝폴더’

이병기 그래텍 부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전공학문보다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고,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 ‘유니코사(UNICOSA)’에서 SW를 취미이자 제2의 전공으로 삼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인연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컴퓨터 상품 기획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고, SW인재 확보를 위한 ‘삼성SW멤버십’ 론칭에도 참여한 바 있다. “민주화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전공 공부보다는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그 시절 만났던 이들이 우리나라 IT산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래텍은 이병기 부사장, 곽정욱 대표, 배인식 의장 등 ‘유니코사’ 출신 선후배들이 의기투합해 1999년 설립한 회사다. ‘그래’라는 긍정의 의미와 테크놀로지의 ‘테크’를 합성한 사명을 지닌 이 회사는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이 부사장은 “한창 IT붐을 타고 웹이 확산되던 시기였고, 마침 삼성전자에서 웹마스터를 맡은 경험도 있었던 터라 창업을 시도해도 될 것 같았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창립 이듬해 내놓은 첫 사업모델은 현재 클라우드의 프로토타입에 가까웠던 가상데스크톱 서비스 ‘팝데스크’였다. 웹브라우저 상에 개인의 작업환경을 구현해주고 기간제로 가상의 파일 저장 공간을 제공해주는 이 서비스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었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었고 사용자 급증에 따라 인프라 비용 부담도 가중됐다. 이에 이용 빈도가 높았던 폴더 서비스만을 따로 떼어 ‘팝폴더’를 출시, 초고속인터넷의 보급에 발맞춰 유료 고속다운로드 모델을 추가했다. FTP파일전송 기능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웹하드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윤리경영 위한 선택과 집중에서 태어난 ‘곰’

“웹하드 유료 서비스로 고속성장을 이뤘지만, 어느새 저작권 침해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오해도 받게 됐는데, 이는 우리가 원치 않았던 방향이었다.” 웹하드와 P2P파일전송 서비스 등으로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이를 통해 불거진 저작권 침해나 불법 콘텐츠 유통 등의 문제들은 그래텍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이에 그래텍은 해당 사업들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게 됐다.

그래텍이 새롭게 초점을 맞춘 분야는 동영상이었다. “모니터 사이즈의 변화를 유심히 봤다. 4:3에서 16:9로 바뀌어갔는데, 이는 컴퓨터가 주력 엔터테인먼트 기기로도 자리 잡고 있다고 풀이됐다”는 것이 이병기 부사장의 설명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2003년 출시한 ‘곰플레이어’는 다운로드가 완료되지 않아도 부분적인 재생을 지원하는 점에서 차별화돼 시장에 안착, 기존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할 수 있게 해줬다. 선택과 집중이 성공한 셈이다.

‘그래텍 온라인 미디어플레이어(Gretech Online Media player)’의 준말인 ‘곰(GOM)’ 제품군은 이후 그래텍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했다. ‘곰플레이어’와 더불어 ‘곰오디오’, ‘곰인코더’ 등 다양한 제품을 함께 서비스하고 있으며, 이들을 기반으로 한 핵심 사업으로 2006년부터 시작한 OTT(Over The Top) VOD(Video On Demand) 서비스 ‘곰TV’의 경우 그래텍의 사명보다도 널리 알려졌다.

“현재 곰플레이어가 지원하지 못하는 코덱도 일부 있고, 이에 대한 사용자들의 불만도 알고 있다. 사용대가를 지나치게 높게 요구하는 코덱들인데, 최대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몇 타 서비스들처럼 불법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 이 부사장은 그래텍이 ‘곰’ 제품군을 선보인 이래 ‘페어플레이’를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SW와 콘텐츠의 가치를 알고 이를 지킬 수 있어야 상생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읍참마속, e스포츠 사업 정리 선택

그래텍이 ‘곰TV’를 서비스하면서 가장 고심해왔던 부분은 콘텐츠 확보와 이를 제공하기 위한 비용이다. 인터넷 프로야구 생중계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었지만, 이후 경쟁에 의한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없어 중단했던 적도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의욕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이병기 부사장은 털어놨다.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e스포츠 사업을 지난해 정리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MBC게임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콘텐츠를 비교적 저렴하게 확보, e스포츠 업계와 인연을 맺게 됐고 젊은 층의 반응도 좋았다. 서너 차례 진행하니 타 방송에서 견제가 들어와, 아예 직접 만들려고 목동스튜디오도 차리게 됐다. 그런데 이후로 점차 스타 열기가 감소하면서 시청자가 줄어들었고 e스포츠협회의 갈등도 표면화돼, 그 가운데 콘텐츠 제공자로서 자리매김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텍은 ‘스타크래프트2’ 주관 방송사로 선정돼 ‘GSL’ 개최를 맡아, 삼성역에 대형 스튜디오도 새로 마련하면서 e스포츠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스타2’는 전작과 달리 e스포츠 시장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새롭게 ‘리그오브레전드(LoL, 롤)’이 대세로 부상하면서 ‘스타’ 중심의 콘텐츠는 그동안의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또한 타 방송에서 ‘롤’에 대한 독점적인 계약을 맺고 있어 관련 콘텐츠로 시청자층을 확장하기도 어려웠다.

이 가운데 아프리카TV 측에서 e스포츠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스튜디오 등 인프라와 함께 그래텍의 e스포츠 사업부문을 지난해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 부사장은 “e스포츠 등 콘텐츠 제작 사업은 많은 자본이 요구돼, 자사가 운영하기에는 부담됐던 것도 사실이다. 보다 본질적인 비디오 관련 기술과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구조를 새롭게 정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텍으로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텍의 전환점, 비디오 전문기업 향해 집중

현재 그래텍의 주요 사업영역은 ‘곰TV’로 대표되는 콘텐츠사업, ‘곰’제품군을 위시한 SW사업, 100% 자회사 ‘곰eXP’에서 주도하는 O2O(Online to Offline)사업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주요 수익원은 광고 및 콘텐츠 판매이며, 비디오 관련 O2O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그래텍의 새로운 선택과 집중은 ‘비디오 전문기업’을 향해있다.

“비디오 전문업체로 성장해왔으니 앞으로도 비디오 분야에 집중하려 한다. 함께 컴퓨터를 갖고 놀던 사람들이 세운 회사라, 양질의 SW를 전달해 더 즐겁고 편리해지도록 돕고 그 안에서 수익 기회를 만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자사가 개발한 대부분의 SW를 1차적으로는 무료 배포하는 이유다.”

▲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곰믹스' 사용화면

그래텍은 ‘올 어바웃 비디오’를 슬로건으로 삼아, 영상의 제작-감상-공유(Make-Play-Share)를 아우르면서 상호 연계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신제품 ‘곰믹스’는 초보자도 간편하게 영상을 편집해 수준급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지난달에는 출시 3개월 만에 2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또한 1인 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개인방송 솔루션 ‘곰스튜디오’도 지난해 말 출시했다.

대표적인 제품인 ‘곰플레이어’의 경우 최근 360도 VR(가상현실) 동영상 재생과 하드웨어 가속 등의 기능이 추가됐으며, 지속적인 성능 및 사용편의성 개선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과 수요에 대응하면서 범용 플레이어로 자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병기 부사장은 “각 제품과 서비스가 그간 개별적인 도구라는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해 플랫폼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상호 연계와 확장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함께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변화와 도전 위해 새로운 먹거리 찾아나서

그래텍은 현재 실시간 로그 분석 솔루션 ‘스플렁크(Splunk)’를 도입해 자체 빅데이터 분석을 수행하고 있으며, VR과 머신러닝(기계학습)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양한 VR 콘텐츠가 생활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고 판단, PC와 모바일 기기 중심으로 VR 기능 및 서비스 제공을 꾀할 계획이다. 머신러닝의 경우 소비자 콘텐츠 관심도 분석 및 서비스 최적화에 적용을 고려중이며, 머신러닝을 활용한 B2B 영상분석 솔루션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래텍이 투자해 설립한 JV(조인트벤처) ‘아마란텍’과 뉴미디어를 위한 SW기술협력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그래텍은 자회사 곰eXP를 비디오 관련 O2O 전문기업으로 변신시켜, 직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업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근에는 반려동물 돌보미 매칭 서비스 ‘펫스테이’, 커플전용 SNS ‘퍼플’ 등 생활밀착형 모바일 앱 서비스들을 선보였다. 이에 대해 이병기 부사장은 “사업은 항상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여야 하는 것으로, 그 기회를 사내 구성원들이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마련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 기업가의 의무”라고 밝혔다.

올해 그래텍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해외사업을 통해 수익성을 확대해나간다는 전략이다. 현지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와 터키 등 한류 콘텐츠가 흥행하고 있는 곳들을 집중 공략할 계획으로, 이 역시 우선 저변을 넓히고 이후 수익화를 꾀할 방침이다.


2020년, ‘국내 비디오 분야 3대 기업’ 목표

“2010년대 들어 다소 침체됐던 시기도 있었고, 과거보다 시장에 접점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의 흐름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고, 이제 전열이 재정비됐다고 본다. 올해는 그간의 부진을 변화와 도전으로 반전시키는 전환점이다.”

그래텍은 2020년까지 ‘국내 비디오 분야 3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글로벌 전문기업들 및 주요 포털사업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및 사용자들과의 소통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그래텍 역시 이를 인지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량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새롭게 변화와 도전에 임하는 그래텍이 이병기 부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곰’ 같은 뚝심으로 목표를 달성해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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