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컨설팅의 김경준 전무가 6월 7일 열린 '제 20차 영림원 CEO 포럼'에서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 전무는 이번 강연에서 "로마가 무려 1천년 동안 유지된 비결은 '개방성'이었으며, 이를 뒷받침한 것은 '리더십', '시스템', '인센티브' 등 3가지 요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로마의 성공 스토리는 우리 사회와 기업의 선진화를 위한 조직 활성화 방안, 리더십 확립을 위한 방법론을 세우는데 현대판 경영 이론보다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다.

'로마'라는 SW는 지금도 살아있다

2천년 전의 '로마제국' 하면 떠오른 이미지가 무엇인가? 아마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 '쿼바디스'에서 불타는 도시를 보며 시를 읊는 난폭한 황제,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경기 장면 등이 연상될 것이다. 이는 로마제국이 향락적, 야만적, 폭압적, 그리고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정말 그러한가? 10년전에 접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로마인들의 성공스토리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실력과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깨달았다. 또 로마인들의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에 기반한 인간, 조직, 국가의 경영방식이 통렬하게 다가왔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촌락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한 로마는 700년의 성장기를 거쳐 300여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비유하자면 구로 디지털단지의 어느 벤처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나 GE와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기원전 753년에 건국해 기원후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그리고 기원후 1453년 동로마 제국 멸망으로 로마라는 하드웨어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 소프트웨어는 2007년 현재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 군사력, 법, 종교 등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로마법은 나폴레옹 법전, 독일법, 일본법, 그리고 한국법으로 이어졌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인의 연령을 18세, 최대 권력자의 출마 연령을 4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로마법에서 연유한다.

로마 성공의 키워드 '개방성, 리더십, 시스템, 인센티브'

로마가 1천년 동안 역사를 지속하고, 그 가운데 300년간 서방 세계의 패권 국가로 군림한 것은 '개방성'이라는 가치를 굳건히 지켰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다고 로마인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음에도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해 그토록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유연함 때문이었다"고 서술했다.

로마는 적까지 포용하는 대담한 개방성을 보였다. 그리스는 피를 나누지 않으면 '남'이라고 여겼지만 로마는 누구나 뜻을 함께하면 '우리'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인종, 종교, 민족, 계급을 따지지 않는 열린 세계관을 펼쳐 보인 것이다. 동원 가능한 군사력이 그리스의 경우 2만여명에 불과했지만 로마는 100만명을 훨씬 넘은 것은 바로 열린 사고 방식 때문이다.

로마에서 이러한 개방성의 철학을 정립하고 제도화한 인물이 2대왕 누마이다. 누마왕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적군의 지도자는 죽이고 일반 병사들은 노예로 삼았던 전례에서 벗어나 로마의 시민으로 편입시켰다. 실례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 문필가, 정치가로 꼽히는 카이사르는 로마에 정복 당한 알바롱가 왕족의 후예였다. 카이사르는 8만명의 군사력으로 50만명이 넘는 갈리아와 싸워 이기고 전 지역을 정복했다. 또 노예의 아들로 황제가 된 페르티낙스도 로마의 개방적인 사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로마는 철저히 실력주의 원칙을 고수해 인재 활용의 범위를 넓혔다. 이를 통해 내부 자원의 총력 동원체제를 마련했으며, 꾸준한 개혁으로 반체제 인사나 지역을 체제안으로 흡수했다. 로마는 강대국이 된 뒤에도 모든 일을 독점하지 않고, 아웃소싱했다.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합리적인 분업구조를 만든 것이다. 로마에는 패전 책임을 물어 처벌하지 않았다. 어려운 싸움의 패배를 딛고 일어서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를 준 것이다.

로마의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로마가 성공한 비결로는 이러한 개방성 외 리더십, 시스템, 인센티브 등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들 수 있다. 먼저 리더십 부문을 살펴보자. 로마는 예비 지도자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지도층의 자제들은 군대와 말단 행정직을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로마의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는 지도층일수록 철저히 법을 지키는 미덕을 보였다. 최고 통치자의 가족이라도 법 안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또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았다. 현장 책임자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했는데 이 때문에 로마의 지휘관은 오직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로마의 리더에게 실력은 필요조건, 희생 정신은 충분조건이었다. 전쟁이 나면 지도층은 가장 먼저 무기를 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권위를 확보했다.

두 번째 시스템 부문을 살펴보자. 로마 군단의 전투력은 조직력과 매뉴얼에서 나왔다. 또 물질적 여건을 마련하고 나서 조직원의 정신력을 강화했다. 물적 토대를 다진후에 열정과 헌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특히 로마는 공정하고 적정한 세금체제로 번영의 토대를 닦았다. 단순명료한 세제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는 합리적인 세금제도가 없으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세 번째 인센티브 부문을 살펴보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어느 학자는 경제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센티브'라고 답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모든 경제 현상은 인센티브라는 한 단어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인센티브는 실력주의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다. 로마에서는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다. 계약직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CEO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우둔한 사람은 경험에서조차 배우지 못한다.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다. 개방성과 실용정신으로 일궈낸 로마의 성공 스토리는 2천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살아 숨쉬는 교훈이 될 것이다.

김경준 전무는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 쌍용경제연구소, 쌍용정보통신 등을 거쳐 2000년에 딜로이트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전략그룹을 맡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경영코칭' 및 '엄홍길의 정상경영학', 에 '역사에서 배우는 경영전략-로마인 경영스토리'를 연재하는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잘되는 회사는 분명 따로 있다』, 『인정받는 팀장은 분명 따로 있다』『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 『소니는 왜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나?』『거친 산 오를 땐 독재자가 된다-엄홍길의 정상경영학』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등이 있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