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NBT 대표

[컴퓨터월드]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 내내 화두가 됐던 단어다. ‘창조경제’ 이름하에 정부 주도로 소프트웨어(SW)산업 육성이 이뤄지면서 청년창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및 투자도 함께 늘어났고, 이 가운데 몇몇 기업들이 먼저 자리를 잡으면서 2000년대 벤처붐에 이어 새로운 창업 열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최근 현 정권의 실책과 과오가 속속 드러나면서 정국이 혼란해짐에 따라, 그동안 ‘창조경제’와 직간접적으로 맞닿아있던 산업분야들 또한 얼어붙을 조짐을 보여 우려를 사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엄한 불똥이 튈까봐 염려하면서도, SW산업과 스타트업 육성은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스타트업들로서는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에서, 이미 궤도에 오른 선배 스타트업들의 노하우를 알아본다면 이러한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나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스마트폰 잠금화면 앱 ‘캐시슬라이드’를 선보인 이래 연매출 수백억 원을 기록 중인 NBT에게 그 노하우를 물어봤다.

▲ 박수근 NBT CEO

 주요 약력
 - 2012년 NBT 창업, 現 CEO
 - 2010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입사
 - 1986년생,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흐름을 읽고 승부를 걸다

“처음 이 회사를 세울 때는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기존의 틀에 박힌 체계와 관념을 벗어나, 그저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무작정 모인 곳이었기에, 딱히 명확한 계획을 갖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NBT라는 기업명은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을 줄인 말로, 기존 시장과 기업들의 구조적인 한계를 벗어나 앞날을 위한 새롭고 큰 뭔가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박수근 NBT 대표가 이야기해준 창업과정은 다소 황당하기도 한데, 박 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시장질서나 조직문화와 같은 기존 체계에 염증을 느껴온 이들이 하나둘씩 뭉쳐 ‘넥스트 빅 씽’ 만들기에 도전해보자면서 일단 회사부터 세웠다. 즉, 창업 초기에는 이렇다 할 사업계획도 없었고, 먼저 모인 다음에야 아이템을 발굴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안착을 운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해 박수근 대표는 ‘넥스트 빅 씽’을 읽어내기 위한 시야와 노력의 몫도 적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2012년 당시는 모바일이 대세로 본격적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는데, PC 환경에서의 포털사이트와 같이 모바일 사용자가 첫 화면으로 삼을 만한 서비스는 마땅치 않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미디어를 목표로 개발에 착수, 처음 선보인 서비스가 바로 지금의 NBT를 있게 해준 모바일 잠금화면 앱 ‘캐시슬라이드(cashslide)’다.


도전하는 기업이면 스타트업

NBT는 ‘캐시슬라이드’의 성공으로 이미 창업 이듬해에 매출 200억 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도 매출 500억 원을 올렸다. 매출만 놓고 보면 스타트업 단계를 조기 졸업했다고 볼 수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박수근 NBT 대표는 여전히 자사를 스타트업이라 칭하면서 뭇사람들을 갸웃거리게 만든다. 설립된 지 오래되지는 않았기에 스타트업이라 하는 걸까. 거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가 다양한데, 기업규모나 업력으로 규정하는 게 과연 적합한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매출이 높은 스타트업도 있고, 또 직원 수가 적은 중견기업도 있다. 이는 우리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결국 기업의 외형보다는, 무슨 목적을 갖고 무엇을 해내며 어떤 결과를 내는가에 달렸다. 일반적인 사안들을 다루는 곳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어렵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의 해결에 나서는 곳이 스타트업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기술력, 실행력과 같은 것들이 남들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 실패할 공산이 더 큰 모험이지만, 만약 해결에 성공한다면 말 그대로 ‘넥스트 빅 씽’을 차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수근 대표가 바라보는 스타트업의 정의가 바로 NBT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창의성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더욱 민첩하게 도전하는 기업이 바로 그것이다.


성공은 믿음과 변화로부터

“스타트업들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또 시시각각 시장상황이 변화하므로 성공을 위한 조건 역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믿음’이라 본다. 도전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물론, 세상과 시장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 믿음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힘든 시기를 지탱하게 해줄 원동력이라 여긴다.”

스타트업의 성공조건에 대해 물어봤을 때, 박수근 NBT 대표는 가장 먼저 ‘믿음’을 꼽았다. 어찌 보면 빤하다고도 할 수 있는 답변이지만, 지금과 같이 스타트업들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그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음으로 박수근 대표가 주문한 것은 바로 ‘애자일(agile)’이다. 오늘날 기업의 민첩성은 IT분야 전반에서 강조되고 있다. NBT의 경우, 정형화된 툴이나 방식으로 구현되는 ‘애자일’이 아니라,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애자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기민하게 파악해 계획을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하면서 궁극적인 목표에 다가설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교류와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 분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피봇(pivot)’에 대해서도, 사업 자체를 변경하는 대규모 변화만이 아니라, 시장과 사용자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은 피봇’도 충분히 의의를 갖는다고 박 대표는 의견을 피력했다.


자신만의 ‘넥스트 빅 씽’을 찾아라

“요즘 정국 혼란으로 적잖은 스타트업들이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동안 창업이 지나치게 권장돼온 것도 사실이다. 모든 이가 창업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일단 창업부터 하고 보라는 식의 정책보다는, 창업 이후에 대한 세부적인 지원이 보다 절실한 시기다.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창업에 뜻을 둔 이들은 희망을 잃지 말고 각자의 특색을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NBT의 첫 ‘빅 씽’은 출시 4년 만에 누적 가입자 1,800만 명, 일간 사용자 수 260만 명을 기록한 ‘캐시슬라이드’일 것이다. 그럼 현 시점에서 NBT의 ‘넥스트 빅 씽’은 무엇일까. 박수근 대표는 실시간 경매 방식을 도입한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 서비스 ‘애디슨(AdiSon)’을 지난해 내놓으면서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한편, 일찍이 글로벌 진출을 준비해 최근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서비스 명칭부터 현지법인까지 현지화에 집중, 지난 2014년 ‘캐시슬라이드’ 중국 현지화 버전인 ‘쿠화(coohua)’를 론칭해 1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데 이어 미국 현지화 버전인 ‘프론토(fronto)’의 베타서비스도 현재 진행하고 있다. 결국 스타트업의 ‘넥스트 빅 씽’은 글로벌 시장이라는 ‘큰 물’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 박수근 NBT 대표는 스타트업들에게 믿음을 갖고 특색을 살려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권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수근 대표에게 지난 5년 동안에 비춰 NBT의 5년 후 모습을 예상해 달라 했다. “아직 모바일 잠금화면 플랫폼이 지닌 잠재력에 비해 고객과 미디어에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조심스럽다”면서도 그는 “그때쯤이면 ‘넥스트 빅 씽’ 두세 개를 이미 만들어내고, 또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새롭게 시도 중이지 않을까”라며 웃음 지었다. NBT와 함께 ‘넥스트 빅 씽’을 찾아 ‘큰 물’에서 놀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우리나라에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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