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내 자료는 내 공전소에'...'공전소 공화국' 될 판

'공신력 있는 제 3자'가 운영해야할 공인전자문서보관소(이하 공전소) 사업권을 삼성SDS, LG CNS 등 공공성이 없는 사기업들에게 부여해도 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섞여 있다.

산업자원부는 설비 및 자산 상태 등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공전소를 운영하도록 자격을 부여해주고 있다. 산자부는 "공전소는 경제모델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건이 가장 중요한 자격사항"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1호 사업자 KTNET(한국무역정보통신)에 이어 LG CNS가 두 번째로 산자부의 공전소 사업 승인을 받았고, 삼성SDS도 조만간 사업자 인증을 받게 될 예정이다. 코스콤(구 증권전산)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 대형 은행 등 다수의 금융 업체들이 자체 공전소 설립을 고려하고 있다.

'공인'아닌 '그들만의 공전소'
한국무역협회 출자로 설립된 KTNET은 무역업계의 전자문서 작업을 16년간 담당하며 '전자무역'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또한 코스콤 역시 30년동안 증권업계의 전자문서를 관리하는 등, 전산 시스템을 개발․운영해왔다. 때문에 이 두 기관은 업계에서 대체로 '공신력 있는 제 3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LG CNS나 삼성SDS는 공공적인 성격을 띠지 않는 사기업이고, 전체 산업 또는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한 대표성이 없으며, 전자문서 관리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면에서 공전소 사업자로서 적합한 지 의구심을 유발한다.

기술적으로는 삼성과 LG가 시스템의 안정성이나 보안 측면에서 손색없이 운용할지는 몰라도, 이들의 공전소를 과연 진정한 '공인', 즉 '제 3자'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게 문제 제기의 핵심이다. 삼성과 LG가 운영하는 공전소에 경쟁업체들이 기밀문서를 믿고 맡기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한 사실이고, 각각 그룹사들 위주로 고객층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LG나 삼성에 공전소 사업권을 주는 것은 '공전소의 근본 개념'을 무너뜨리고, 재벌기업에 SI나 보험사업 같은 안정적인 사업만 하나 더 보태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우려다. 실제로 현재 경제적 여건이 되는 기업들은 자사의 물량을 보관하기 위해 너도나도 공전소 설립을 희망하고 있다. 집안일을 바깥에 새나가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수익성 괜찮은 사업을 하나 더 여는 셈인 '그들만의 보관소'가 땅밑에서 우후죽순 생겨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최악의 경우 그룹사가 운영하는 공전소가 아니면 못믿는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지고 마침내 대한민국은 '공전소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웃지못할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수의 금융기업들이 자체 공전소 구축을 고려하는 이유도 사실상 "남한테 믿고 맡길 수 없다"는 배경을 깔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또한 "신뢰할 수 있는 공인에게 전자문서를 맡겨 종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공전소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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