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의성 리소코리아 부사장

[아이티데일리] 급격히 디지털화되는 사회에서 인쇄업은 ‘만년 사양산업’이라 불린다. 특히, 소품종 다량생산에 적합한 공판 인쇄는 최신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저물어가는 인쇄기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공판인쇄는 판을 만들고, 판의 구멍을 통해 판 아래 놓인 종이·베·플라스틱 등의 표면에 인쇄잉크나 안료로 구멍의 모양대로 찍어내는 방법을 원리로 한 인쇄법이다. 공판인쇄기는 판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다량 인쇄가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학교, 관공서 등에 도입돼 가정통신문, 시험지, 문서 등을 인쇄하는 데 사용됐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마트기기의 등장과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인쇄 트렌드가 두드러지고 첨단 사무기기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공판인쇄는 점차 사양산업으로 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공판인쇄기의 ‘이유 있는 선전’이 시작됐다. 첫 번째 이유는 최근 복고를 새롭게 해석한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빈티지한 색감과 질감을 살릴 수 있는 독특한 인쇄 방식인 ‘리소그라프(RISOGRAPH)’가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리소그라프’는 자사의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실크스크린 방식의 디지털 공판인쇄기를 이용한 인쇄 기법으로, 미세한 구멍으로 잉크가 통과되면서 종이에 이미지가 전송되는 스텐실인쇄원리를 디지털 기술로 자동화한 방식이다.

‘리소그라프’는 친환경적인 쌀겨 오일 잉크와 대두유로 만든 소이 잉크(soy ink)를 사용해 일반적인 석유 소재의 잉크보다 밝고 선명한 색을 표현할 수 있고, 여러 색을 겹쳐 인쇄하여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살릴 수 있어 젊은 아티스트들이 독특한 아날로그 감성의 작품을 만드는데 널리 활용하고 있다. ‘리소그라프’는 이제 하나의 고유 명사로서, 이미 보편화된 일본과 유럽을 넘어 국내 아티스트들도 즐겨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국내 예술대학의 경우, 리소그라프 수업이 생겨날 정도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에 매력을 느낀 디자인 업계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불과 몇 년 새 디자인 업계에서의 공판인쇄기 도입이 크게 급증하게 됐다.

두 번째 이유는 지난해 숙명여고의 시험지 유출 사건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중, 고등학교에서 비슷한 유출 사건이 일면서 학교 내 시험지 유출에 대한 보안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고교 시험지 유출사고 현황을 공개했는데, 지난 4년간 전국 고등학교에서 13건의 시험지 유출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교 시험지 평가관리실태 전수점검결과’를 보면 전국 고등학교 1/3이 시험지를 보관하는 평가관리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지 않았으며, 교사가 휴대폰을 들고 시험지 인쇄실에 출입해도 제재하지 않는 고교가 10%를 넘었다.

이에 각 시교육청이 인쇄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학교의 시험지는 다량의 인쇄 물량과 빠른 속도, 저렴한 인쇄비용 등의 이유로 사무실에서 쓰이는 일반 잉크젯이나 레이저 프린터가 아닌 디지털공판인쇄기로 출력하는 경우가 많다.

자사의 경우, ‘보안’ 기능이 탑재된 공판인쇄기를 보유하고 있어 보안 기능을 갖추지 못한 공판인쇄기의 교체 수요로 인한 반사이익을 봤다. 리소코리아의 공판인쇄기는 인쇄한 사람, 인쇄 매수를 확인할 수 있는 로그정보 외에도 여러 가지 독특한 보안 방식을 갖추고 있다.

USB를 활용한 시험지 복사가 대표적이다. 전용 프로그램으로 시험지 파일을 암호화해, 인쇄기 외에 다른 PC나 노트북에서는 파일을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종이 원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만약 USB를 도난당하거나 분실한다고 해도 시험지 내용은 확인되지 않아 안전하다.

트렌드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공판인쇄기가 오히려 새로운 수요로 인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창업한 지 30년이 지난 현재 10곳 중 8곳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만큼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지만, 한 분야에서의 ‘끈질긴’ 경쟁력과 전문성은 ‘준비된 자세’로 새로운 수요를 만나기도 한다. 리소는 1946년 설립 이래 공판인쇄 분야에 집중해 세계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사양산업으로 불렸던 공판인쇄기가 오히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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