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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산업 20년 전] 요동치는 CPU 시장, 인텔 아성에 도전하는 AMD1999- AMD 7세대 CPU ‘애슬론’ 출시, 인텔과 경쟁 나서 / 2019- IT 패러다임 변화, 경쟁보다는 협업 선택해야
   

[컴퓨터월드] CPU 시장은 항상 인텔의 독무대였다. 종종 AMD가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99년, 인텔이 독점하고 있던 CPU 시장에 AMD(Advenced Micro Device)가 7세대 CPU ‘애슬론’을 출시하며 인텔과의 경쟁을 선언, PC 업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2019년, 아직도 CPU 시장에서 인텔의 독점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AMD의 추격이 만만찮다. 인텔이 독점하고 있던 CPU 시장을 서서히 잠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1999년과 2019년, CPU 시장에서 벌어지는 인텔과 AMD의 움직임을 알아봤다.
 

변화 감지되는 CPU 시장, 소비자들 AMD에 ‘열광’

1999년 3/4분기 CPU 시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K-6 시리즈’로 저가형 시장을 공략해온 AMD가 인텔의 ‘펜티엄Ⅲ’보다 성능이 뛰어난 제품인 ‘애슬론(Athlon)’을 내놓고 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그동안 인텔의 뒤를 따라가던 AMD가 인텔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 AMD가 출시했던 ‘애슬론’

AMD가 개발과정에서 ‘K-7’이라고 불렸던 ‘애슬론’은 인텔에서 1999년 개발 중이던 ‘윌라메트’와 같은 세대의 윈도우 칩이었다. AMD가 ‘애슬론’을 차세대 CPU라고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였다. AMD가 ‘애슬론’을 차세대 CPU라고 내세웠던 또 다른 이유는 ‘애슬론’이 이른바 6세대인 펜티엄이나 K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아키텍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AMD에 따르면 이 새로운 마이크로 아키텍처로 인해 ‘애슬론’은 인텔의 ‘펜티엄Ⅲ’보다 성능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각종 벤치마크테스트(BMT)에서도 ‘애슬론’은 여러 분야에서 펜티엄Ⅲ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999년 인텔이 독점하고 있던 CPU시장에 적지 않은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당시 PC 통신이나 인터넷의 여러 BMT 사이트에서는 ‘애슬론’ 얘기로 떠들썩하기도 했었다. “3D 게임에서 저조한 성능을 보였던 과거의 칩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비롯해, “인텔의 CPU 락인(Lock-in)에서 벗어날 기회”라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

전 세계의 CPU를 상대로 1년에 한 차례 품질을 평가하는 ‘마이크로 디자인’은 1999년 당시 ‘애슬론’이 인텔보다 18개월 이상 앞선 제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었다. 애슬론에 대한 당시 반응은 한마디로 ‘열광적’이었다. 물론 애슬론에 대한 이러한 열광에는 ‘독점은 싫다’라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반영됐다고 할 수 있지만, CPU 시장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품이 ‘애슬론’이 처음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AMD는 당초 인텔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CPU를 생산해왔던 기업이다. 그 기간이 무려 10년이었다. 이런 이유로 AMD는 행상 ‘인텔 호환 칩 업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AMD는 ‘K-5시리즈’부터 자체 개발에 들어갔고, 1년 6개월이라는 개발 기간 동안 시장에서 지명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자체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1995년 AMD는 펜티엄의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 ‘넥스젠’을 인수하기도 했었다. ‘넥스젠’의 디자인 능력과 AMD의 생산력, 기술력이 모여 1997년 4월에 ‘K-6’가 탄생했다.

‘K-6’ 발표이후 AMD는 적어도 저가형 시장에서는 인텔과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10대 PC 업체 가운데 델을 제외한 나머지 9개 업체가 ‘K-6’를 채택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1998년 4/4분기 점유율이 이를 증명했다. 당시 인텔의 CPU 시장 점유율은 76.1%로 이전 대비 10.1% 낮아진 반면, AMD는 16.1%로 9.4% 높아진 수치를 보였다. 인텔이 빼앗긴 시장을 AMD가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다.

특히 미국 소매시장에서는 1999년 상반기 ‘K-6’의 점유율이 51.4%를 기록해 38.3%를 차지한 인텔을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AMD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노트북 시장에서도 47%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성능 PC 시장에서는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특히 인지도면에서는 인텔과 비교할 수 없었다. 사실 당시 PC전문가를 제외하면 AMD라는 회사조차 모르는 PC 사용자도 많았다. 회사를 알고 있다고 해도 ‘낮은 성능의 제품을 저가에 공급하는 업체’ 정도로 인식했었다.

AMD는 1999년 내놓은 ‘애슬론’이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애슬론’ 발표 후 마케팅 전략을 180도 수정한 것에서도 AMD가 ‘애슬론’에 얼마나 큰 기대를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각종 BMT에서 인텔에 앞선 AMD

실제 1999년 이전 AMD는 물론 AMD코리아의 마케팅 전략은 인텔과 동급이거나 조금 나은 제품을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게, 싸게 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슬론 발표 이후 인텔보다 한 걸음 앞서 발표한 좋은 제품을 비슷한 가격에 공급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제품 개발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실제 AMD는 인텔의 ‘펜티엄’ 시리즈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가격에 ‘애슬론’을 발표했다. 실제 ‘애슬론’ 500MHz는 249달러, 550MHz는 499달러에 판매했고, 600MHz는 615달러, 650MHz를 849달러에 내놓았다.

AMD가 낮은 회사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제품을 내놓은 것은 제품의 성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지만 애슬론 발표를 저가제품을 공급한다는 회사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AMD는 ‘애슬론’이라는 고성능 제품으로 파워유저를 겨냥하면서 회사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파워유저라면 성능을 보고 제품을 선택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AMD가 ‘애슬론’을 발표한 초기에 큰 매출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 것도, 광고보다는 대학가 로드쇼나 인터넷의 각종 동호회 등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방식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AMD는 이전 제품과 ‘애슬론’을 차별화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우선 ‘애슬론’이라는 이름이다. 제품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들 ‘K-7’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AMD는 이 K-7을 펜티엄보다 한 세대 앞선 CPU임을 내세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름의 ‘애슬론’으로 명명했다. AMD에 따르면 ‘애슬론’은 힘과 경쟁력을 겸비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AMD는 ‘애슬론’으로는 고성능 CPU를 필요로 하는 ‘파워 유저’를 주로 공략하고 일반 수요자는 ‘K-6’로 승부한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특히, AMD는 파워유저가 자사 ‘애슬론’을 사용함으로써 그 영향력이 일반 PC 시장에까지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AMD는 애슬론 발표와는 무관하게 ‘K-6’의 저가 정책을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백만 원 이하의 ‘인터넷 PC’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가격을 맞추려면 ‘K-6’를 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AMD의 입장에서는 ‘국민 PC’ 사업 정책은 사용자들에게 AMD라는 회사 이름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AMD의 이러한 행보는 과거와는 달리 성능과 가격, 두 가지 측면에서 인텔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특히, 우연이었지만 ‘애슬론’의 출시와 함께 AMD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과기정통부의 ‘인터넷 PC 프로젝트’가 시작됨에 따라 AMD는 소비자들에게 자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에 대해 당시 주재량 AMD코리아 대표는 “‘CPU는 인텔’이라는 소비자의 생각이 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IBM과 컴팩이 ‘애슬론’을 채택한 PC를 발표할 것이라고 주장한 AMD코리아 측은 이들 회사에서 판매하는 펜티엄Ⅲ가 모니터를 포함 약 2,400달러인 것에 비해 ‘애슬론’을 채택한 동급 사양의 모델은 모니터를 제외하고 2,000달러가 넘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애슬론은 개인용보다는 기업용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AMD측의 설명이었고, 실제 서버와 워크스테이션에 적합한 ‘애슬론 프로페셔널’과 ‘애슬론 울트라’를 연달아 발표했다. 특히, 기업의 구매 결정권자들을 대상으로한 마케팅 전략까지 세워놓기도 했었다.


‘애슬론’ 출시로 AMD보다 인텔이 더 바빠

‘애슬론’이 파워유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인텔은 대책마련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인텔은 공식적으로는 “경쟁이 있어야 시장이 발전한다. ‘애슬론’의 출시를 인텔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는 했지만, ‘애슬론’이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입장을 보이며 될 수 있는 ’애슬론‘에 대한 언급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 AMD가 ‘애슬론’ 출시를 기념해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전 AMD가 ‘K-6’를 발표할 때와는 달리 ‘애슬론’을 발표한 AMD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달랐다. K-6을 발표할 때는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들을 예로 들면서 AMD의 제품발표가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애슬론의 경우는 달랐다, 이러한 상황은 인텔의 반응에서도 잘 나타났다. 인텔의 반응은 이미 가격 정책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중소 PC업체를 운영하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펜티엄Ⅲ의 가격이 50만 원 대 후반이었으나 ‘애슬론’ 출시 이후 30만 원 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인텔의 이같은 가격정책은 인텔의 긴장감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실제 인텔은 1999년 8월 22일 공식적으로 가격을 인하했다. 물론 가격인하가 ‘애슬론’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인텔은 AMD의 ‘애슬론’ 출시 이후 성능을 향상시킨 ‘펜티엄Ⅲ 600MHz’를 시장에 내놨다. 이 제품의 가격은 699달러로, 이전에 인텔이 제품을 출시했을 때, 특히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을 때의 새 제품 가격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 당시 업계의 분석이었다. 인텔은 펜티엄Ⅲ가 대량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애슬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인텔의 입장에서 AMD가 경쟁상대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할 수 있겠지만 AMD의 ‘애슬론’ 발표 이후 인텔과 AMD가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이미 현실이었다. AMD는 인텔이 내놓은 최상위 모델인 ‘펜티엄Ⅲ 600MHz’는 같은 클럭속도의 ‘애슬론’보다 50달러가량 비싼데도 성능 면에서는 오히려 뒤쳐진다고 주장했다. 특히, 1999년 발표한 ‘펜티엄Ⅲ 600MHz’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성능만을 높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인텔이 개발하고 있는 7세대 CPU ‘윌라메트’가 2000년~2001년쯤에 출시될 예정이라는 점을 들어, 오히려 7세대 CPU만 놓고 본다면 인텔이 AMD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AMD의 주장이었다.


메인보드 호환성 해결이 과제

AMD는 1999년 출시된 모델이 ‘애슬론’ 시리즈 가운데 가장 낮은 사양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계속해서 상위 모델을 발표하게 된다는 것으로 암시한 것이다.

성능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애슬론’도 문제는 있었다. CPU와 호환되는 칩셋이 별로 없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의 메인보드와 같이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애슬론’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제품일지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AMD역시 후발주자의 설움을 그대로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AMD는 자체적으로 ‘AMD750’이라는 칩셋을 만들어 메인보드 업체에 공급했다. ‘애슬론’ 전용 메인보드를 만드는 업체는 MSI, 기가바이트, BEA 정도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인터넷의 각종 동호회에서는 ‘인텔의 입김’ 때문에 마더보드 업체들이 ‘애슬론’용 마더보드의 개발을 고의로 지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당시 대부분 메인보드 업체들이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취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애슬론’용 메인보드를 생산하는 업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일본만 해도 일반 사용자들이 직접 조립해서 쓸 수 있을 정도로 호환성을 인정받은 안정된 칩셋이 나와 있다는 점은 ‘애슬론’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199년 PC업체 중 IBM과 컴팩이 ‘애슬론’을 채택한 것도 AMD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미국의 한 리서치 회사 관계자는 인텔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위험을 동반하는 큰 보상이 뛰따르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PC사업자들은 AMD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프로세서를 제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1999년 이전에도 AMD가 펜티엄 시리즈보다 속도가 빠른 칩을 만들어 놓고 제조능력에서 한계를 보여 기회를 놓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다.


CPU 성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진 않아

AMD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가격이었다. PC업체의 입장에서는 CPU의 가격도 중요하지만 주변기기의 가격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애슬론’을 장착한 PC가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려면 ‘애슬론’이라는 높은 코어에 걸 맞는 시스템 사양을 갖춰야 하는데, 이럴 경우 주변기기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 당시 PC업체들의 주장이었다.

‘애슬론’이 갖고 있는 성능과 기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액세스 속도가 빠른 주변기기, 7,000~8,000RPM을 보장하는 하드드라이브가 필요했다.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애슬론’의 위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기존 주변기기는 인텔 아키텍처의 사양에 맞춰져 있어 인텔 CPU와 다른 아키텍처를 가진 ‘애슬론’은 이 환경에서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1999년은 ‘애슬론’의 출시로 CPU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위치를 지키려는 인텔과 이를 추격하려는 AMD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펜티엄을 셀러론과 펜티엄Ⅲ로 나눠 셀러론의 가격을 크게 내림으로써 K-6의 AMD를 따돌리려던 인텔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애슬론’을 발표한 AMD는 이미 시장의 30%를 차지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AMD의 목표가 달성될 지는 미지수지만, 인텔이 그동안 해오던 것처럼 CPU 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의견일치를 보고 있었다.,


국내 PC 업체들도 ‘애슬론’ 도입에 관심

‘애슬론’의 성능이 인정받으면서 국내에서도 이 칩을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AMD에 따르면 많은 업체들이 ‘애슬론’을 테스트하면서 AMD코리아와 협상을 진행 중이고, 그 가운데 ‘멀티캡’과 중견 PC업체 ‘푸른나래’는 이미 ‘애슬론’을 탑재한 PC를 발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멀티캡’은 ‘애슬론 500MHz’를 180만 원, ‘애슬론 600MHz’를 300만 원에 각각 내놓았다. 이 회사에서 펜티엄Ⅲ 500MHz를 탑재해 내놓은 PC가 275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멀티캡’ 측은 제품 라인업을 갖추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으며 AMD의 제품에 당장 매출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당장 매출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슬론’이 시장에서 본격적인 바람몰이를 할 경우, 타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푸른나래’는 1998년 초 AMD의 K-6을 채택해 ‘리플’ 시리즈를 내놓고 시장을 공략했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K-6을 탑재한 ‘리플’ 시리즈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시장에서 ‘펜티엄Ⅲ 400MHz’를 탑재한 PC가 100만 원대 중반인데 반해 ‘푸른나래’에서는 ‘K-6 400MHz’를 탑재한 제품을 99만 원에 공급하고 있었다. 펜티엄Ⅲ를 탑재한 PC가 100만 원 이하인 모델이 없는 상황이어서 ‘리플’ 시리즈는 매월 3백~4백 대가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발표였다.

   
▲ 푸른나래가 ‘애슬론’을 탑재해 출시한 ‘리플 애슬론’

‘푸른나래’는 특히, ‘애슬론’을 탑재한 ‘리플 애슬론’을 출시했는데, 600MHz급의 가격이 중소 PC업체로는 결코 싸지 않은 200만 원을 넘고 있었다. ‘푸른나래’는 이 모델을 서버용으로 공급한다는 방침이었다.


다시금 인텔과 격차 좁혀

2006년 인텔과 AMD 두 진영의 점유율 싸움이 한창인 시기, 인텔은 펜티엄4의 발열 이슈로 거센 비판에 직면한 상태였다. 이에 반해 AMD는 ‘애슬론’으로 CPU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인텔은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전 제품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고 아키텍처를 개선한 ‘코어 2듀오’를 출시하게 된다. 성능이 크게 향상된 코어2 듀오는 인텔의 과감한 저가 정책에 힘입어 시장에서 크게 환영받았으며 인텔의 영향력 역시 크게 높아졌다.

이와 반대로 AMD는 애슬론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 길을 걸으며 인텔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특히, 2012년 AMD는 경영난을 겪게 됐다. 당시 글로벌 파운드리를 매각함으로써 자체 생산 능력을 상실했는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AMD가 인텔과의 경쟁에서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AMD는 특단의 조치로 과거 ‘애슬론’의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AMD를 퇴사했던 엔지니어 짐 켈러와 3년간 특별 계약을 맺기도 했다. 당시 AMD가 짐 켈러에게 요청한 것은 “인텔과의 경쟁력을 회복시켜 달라”는 한가지 였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기존 AMD의 ‘불도저 아키텍처’ 기반이었던 것을 포함해 AMD 프로세서 전반에 수정을 가했다.

또한, ‘애슬론’을 설계하면서 이미 검증된 ‘전력, 크기, 성능’이라는 3가지를 토대로 CPU를 새롭게 개발했는데 이것이 현재 ‘ZEN 마이크로아키텍처’의 전신이 됐다.

짐 켈러가 2015년 9월 계약 기간 만료로 AMD를 떠나게 되면서 리사 수 박사가 AMD를 이어 받게 된다. 리사 수 박사 겸 대표는 2014년에 AMD의 부사장 겸 총 책임자를 역임했고 각종 엔지니어 경력과 경영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다. 실제 리사 수 박사가 대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라데온 RX200 시리즈 가격 인하 정책과 더불어 PS4, XBOX ONE 등 콘솔게임기 시장에 진출하는 정책을 펼치는 등 어려움에 처한 AMD를 다시금 인텔의 대항마가 될 수 있도록 AMD를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이어 2017년 2월 21일 ‘라이젠’ 시리즈를 발표하며 AMD가 시장에서 주목받도록 했다. ‘라이젠’은 발표 이전부터 많은 루머를 양산하면서 AMD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당시 시장에서는 라이젠 시리즈와 관련, “인텔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중코어를 사용할 수 있다”, “편집 작업에 치중한 것이 아닌 게이밍 성능에도 치중했다” 등 많은 얘기가 나돌았고 실제로 ‘라이젠’을 계기로 AMD는 인텔과의 경쟁에서 여전히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격차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 AMD가 출시한 3세대 라이젠 데스크톱 프로세서

이 같은 결과로 2019년 7월 AMD가 국내 일일 CPU 판매점유율을 50%를 달성하기도 했다. ‘라이젠 3세대’를 정식 출시한 후 국내 CPU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 AMD와 인텔의 일일 CPU 판매량 점유율

AMD가 출시한 ‘라이젠 3세대’는 7nm(나노미터) 미세공정을 기반으로 설계돼 성능이 향상되는 등 출시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실제 ‘라이젠 3세대’가 출시되자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판매량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AMD가 ‘라이젠’ 시리즈를 출시하고 인텔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던 시기에 인텔은 CPU 공급량을 조절함으로써 국내 시장에서 인텔 CPU 가격이 올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AMD가 CPU 시장에 입지를 굳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 3세대 라이젠 데스크톱 프로세서를 발표하는 리사 수 대표

물론 지금까지의 CPU 시장 상황, 시장에서의 인텔의 입지, 향후 인텔의 제품 개발계획 등을 감안할 때 AMD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인텔이 연내 도입 예정인 새 미세공정 10nm 기반의 프로세서가 등장할 경우 현재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AMD의 기세는 언제든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IT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협업해야

항상 인텔의 압승이었지만 AMD와 인텔이 PC 시장에서 CPU 주도권을 갖기 위한 경쟁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하지만 IT 패러다임은 PC에서 모바일로 바뀌고 있다. PC 시장에서 인텔은 계속 독주해왔지만 IT 주도권이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IT시장에서 인텔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됐다.

퀄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아마존 등 패러다임에 맞춰 변모한 기업들은 IT 업계의 강자로 부상한 반면, 인텔은 과거의 명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물론 인텔도 모바일 시대를 맞아 많은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IT 시장은 다시금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모바일, 즉 스마트폰에서 IoT로 변하고 있다. 이는 AMD와 인텔의 경쟁보다는 플랫폼에 대한 경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IoT 플랫폼에 있어 ARM과 X86 가운데, IoT 플랫폼으로 ARM이 유리하다는 점에 대해 큰 이견이 없다. 인텔과 AMD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모바일 진영이 IoT 전환 시기에 맞춰 PC와의 플랫폼 통합을 진행한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퀄컴은 ‘스냅드래곤 750’을 출시하며 PC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후속작 ‘8CX’를 통해 PC용 플랫폼에 대한 방향성을 확립했다. 또한, 아이맥과 맥북과 같은 PC라인에 인텔 CPU를 사용하고 있는 애플은 자체 CPU를 개발해 이를 대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애플은 궁극적으로 PC와 모바일 간의 운영체제 통합을 계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MD와 인텔이 PC 시장을 놓고 CPU 경쟁을 지속하기 보다는 IT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춰 협업해 ARM에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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